질병관리청 2일 기준 집계 발표
전날 집계치보다 13명 더 늘어
이상반응 사례는 더 추가 안돼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시내 한 병원 앞에 무료 독감 예방 접종 안내문이 붙어있다.

상온 노출이 의심되는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을 맞은 이들이 2일 기준 전국 15개 시·도에서 2303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날 집계된 접종자 보다 13명이 더 늘었다. 추석 연휴로 병·의원들이 문을 닫은 지난달 30일 이후로는 접종자가 나오지 않아, 가파르게 오르던 접종자 증가세가 다소 주춤한 것으로 보인다.

3일 질병관리청(질병청)은 ‘시도·일자별 국가조달백신 접종 현황’ 자료를 내어, 상온 노출 여부를 조사 중인 독감 백신 접종이 지난 2일 기준 전국 15개 시·도에서 2303건이 보고됐다고 밝혔다. 당초 질병청은 상온 노출 백신을 접종 맞은 사람이 없다고 발표했지만, 지난달 25일 이후 현장 조사 결과가 취합되면서 연일 접종자 규모가 늘어 왔다. 전날 질병청은 1일 기준 접종자가 2290명이라고 집계한 바 있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가 673건으로 가장 많았고 광주 361건, 전북 326건, 인천 214건, 경북 161건, 서울 149건, 부산 109건, 대구 105건, 충남 74건, 세종 51건, 전남 40건, 대전 17건, 경남 14건, 제주 8건, 충북 1건 등이다. 의료기관 수로는 전국 병·의원 280곳(중복 제외)에서 문제가 된 백신의 접종이 이루어졌다.

질병청이 문제가 된 백신의 접종 중단을 고지한 지난 달 21일 밤 이전에 접종한 경우가 1599건, 접종 중단 고지 이후(9월23~28일) 접종이 246건에 이른다. 두 유형 모두 국가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사업 지침을 미준수한 사례들이다. 긴급 안내로 일선 의료기관에서 접종 중단 지침을 인지하기 어려웠던 22일 접종 사례는 458건이다. 질병청은 “(무료 접종) 사업 시작 전(~9월21일) 접종 사례는 69.4%, 사업 중단 고지일(9월22일) 접종 사례가 19.9%로 총 파악된 접종 현황의 대부분(89.3%)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9월30일~10월1일 사이에 상온 노출 의심 백신이 접종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추석 연휴로 의료기관 대부분이 문을 닫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상온 노출 가능성이 있는 백신 접종 뒤 이상반응을 보인 사례는 전날 집계한 총 12명에서 더 늘지 않았다. 질병청은 “지자체를 통해 사용 중지된 해당 물량을 사용한 사례를 지속적으로 조사해 확인, 집계하고 있으며, 이상반응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질병청이 조사 중인 상온 노출 가능성이 있는 백신 물량은 모두 578만명분이며, 만 13~18살, 62살 이상 어르신용이다. 질병청은 조사 대상인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게 된 경위와 관련해, △각 의료기관이 정부 조달 무료접종 물량과 유료접종 민간 물량을 분리하지 않고 보관하는 등의 관리 부주의 △무료접종 사업 시작 전(~9월21일) 접종해 지침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 △9월22일 중단 안내가 됐으나 의료기관이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무료 접종 대상자에게 접종한 사례 등이 주된 이유라고 꼽았다.


"증상 대부분 경미, 현재 호전…접종과 연관성 확인 안돼"

일부 인플루엔자 백신이 상온에 노출되는 초유의 사태로 백신 무료 접종이 중단된 가운데 25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을 찾은 한 내원객이 유료로 예방접종을 받고 있다.


운송 중 상온 노출 의심으로 사용이 중단된 정부 조달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을 맞고 이상 반응을 호소한 접종자 8명은 10대 이하가 3명, 30대가 3명, 50대가 2명이었다.

양동교 질병관리청 의료안전예방국장은 2일 오후 충북 오송 질병청에서 열린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정례 브리핑에서 "9월30일까지 조사 중인 정부 조달 물량을 접종한 이후에 보고된 이상 반응 사례는 총 8건"이라고 밝혔다.

8명 중 30대가 3명으로 가장 많았다. 10대와 50대는 각 2명이다. 10세 미만은 1명이다.

접종자들이 호소한 이상 반응은 ▲접종 부위 통증 ▲접종 후 발열 ▲오한·근육통 ▲접종 부위 멍 ▲오한·두통·메스꺼움 2건 ▲두드러기 ▲설사 등이다. 현재 환자들의 증상은 호전된 상태다.

이번 8건은 단순히 정부 조달 물량 접종자 중 이상 반응 신고가 접수된 경우로, 아직 이상 반응과 백신 접종과의 연관성 등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양 국장은 "이번 8건에 대해서는 예방접종 이후에 신고된 모든 사례를 모니터링한 결과이고 예방 접종과의 인과 관계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라며 "지금까지 보고된 8명의 증상들은 대부분 경미하고 현재는 호전돼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9월30일 기준으로 정부 조달 물량을 접종한 것으로 확인된 건수는 전국 15개 시도, 231개 의료기관에서 총 1910건이다.

전체 접종 건수의 66%인 1261건은 보건당국이 상온 노출 의심 신고를 접수하고 사용 중단을 고지하기 전인 지난달 21일 이전에 접종한 경우다. 고지일인 22일에는 22.6%인 431명이 해당 백신을 접종했다.

고지가 이뤄지고 하루가 지난 23일부터 28일 사이에도 추가 접종이 이뤄졌다. 날짜별로 23일 23명, 24일 22명, 25일 96명, 26일 38명, 27일 18명, 28일 21명 등 218명이다.

양 국장은 "예방 접종 이전에 예방 접종 이력 등에 대해 확인을 하고 접종을 한 이후에 등록을 하는 게 원칙"이라며 "위탁 의료기관의 경우 접종비용 상환이 필요하기 때문에 예방접종 등록이 크게 지연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가예방접종사업 전반에 대해서 필요한 개선 사항에 대해서는 함께 검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사용 중단에도 전국 10곳 407명
접종 전문가 “비상 체계 미비 근본 원인”
“국내 코로나·독감 동시감염 사례 3건”
질병관리청, 트윈데믹 경각심 강조


상온 노출 가능성이 있는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접종자 407명이 전국 10개 시·도에 걸쳐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주사 부위에 통증이 생기는 이상반응 사례도 처음으로 나왔다. 질병관리청(질병청)이 ‘사용 중단’을 고지했는데도 정부 조달 백신 접종자가 계속 늘어나는 등 혼선이 이어지자, 근본적으로 백신 접종과 관련한 비상상황에 대비한 체계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질병청은 전날까지 조사 대상 백신이 접종된 사례 407건의 지역 분포를 공개했다. 전북이 179건으로 가장 많았고, 부산 75건, 경북 52건, 전남 31건, 인천 30건, 서울 20건, 충남 13건, 대전·제주 각 3건, 충북 1건 등의 차례다. 접종 시점을 보면, 문제가 된 백신의 ‘사용 중단’이 긴급 안내된 21일 밤 전에 접종받은 이들이 295명, 이후 22일에 88명, 23~25일에 각 8명씩이었다. 정은경 질병청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조사 대상 백신(신성약품 공급)이 전부 상온에 노출된 백신이라고 보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질병청은 접종자 가운데 1명이 이상반응이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고 이날 밝혔다. 접종 대상자가 주사 맞은 부위에서 통증을 호소했다는 것이다. 정은경 질병청장은 “통상 독감 예방접종 대상자의 10~15%에서 주사 맞은 부위가 빨갛게 붓거나 통증이 생기는 이상반응이 발생하기는 한다”며 “접종자들을 1주일의 집중 관찰 기간을 두고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질병청은 약 2만1천곳 예방접종 참여 의료기관에 21일 밤 ‘접종 중단’ 안내를 했는데도 지켜지지 않은 것은 의료기관의 ‘부주의’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감염병 전문가들은 이런 비상사태에 대비책이 없었던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량의 백신이 도매업체(신성약품)의 하청에 재하청을 통해서 전국 의료기관에 배송되는 만큼 유통 사고가 생길 가능성이 상시적으로 있었는데도, 사고 발생 시 대응 요령이 사전에 마련돼 있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교수(감염내과)는 “예년처럼 지난 7월에도 위탁의료기관들에 ‘인플루엔자 국가예방접종 지원사업 관리지침’이 제공됐는데, 지침 안에 이런 비상상황에 대응할 방법은 담겨 있지 않았다”며 “앞으로 코로나19 백신 공급도 해야 하는데, 이처럼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의료기관들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안내할 체계를 구축해놔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질병청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함께 백신 유통 과정 전반을 개선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올해 독감 백신 중요도는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 유행하는 ‘트윈데믹’이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되며 높아졌다. 국내에서는 지난 2월 말 대구·경북 지역에서 동시 감염 사례가 3건 보고됐다고 이날 질병청은 밝혔다. 정은경 질병청장은 “미국에서도 116건을 검사했더니 약 0.9%인 1건, 중국에서는 조사 대상 중 2.7%, 터키에서는 2% 안팎으로 두가지 검사 결과 모두 양성이 나온 사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사회적 거리두기, 개인 위생을 얼마나 철저히 하느냐에 따라 호흡기 감염병 전체 유행의 크기가 결정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서울·부산·전북·전남 일부서 접종
‘상온 노출’ 백신 포함 여부 미확인
질병청 “아직 이상반응 없다”지만
관리 허점에 국민 불안 키워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청장)이 25일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이날 오후부터 만 12살 이하와 임신부의 독감 무료접종이 재개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상온 노출’ 사고로 접종이 중단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을 맞은 사람이 200명 이상으로 확인됐다. 질병관리청이 긴급하게 무료접종을 중단시켰지만, 일부 병·의원 등이 이를 유료접종용으로 사용해 빚어진 일로 보인다. 질병청은 접종자 가운데 이상반응을 보인 사람은 아직 없다고 밝혔지만, ‘백신 불안’은 더 커지는 모양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25일 브리핑에서 사용이 중단된 무료접종용 백신을 “서울, 부산, 전북, 전남 지역 105명이 접종했다. 13~18살과 성인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전북 전주시는 이날 “전주에서만 179명이 해당 백신을 맞았다”고 밝혀, 중복 인원(전주 60명)을 제외하면 200명 이상이 이 백신을 접종했다. 양쪽의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 21일 밤 11시께 무료접종 중단이 고지됐지만, 이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 일부 병·의원과 보건소가 이미 배송받은 신성약품의 독감 백신을 사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일부 의료기관에선 무료접종용인 이 백신을 유료접종에 사용했는데, 전주의 병원 한 곳에서만 60명이 이 백신을 맞기도 했다.

이들이 맞은 백신에 상온 노출이 의심되는 백신이 포함돼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정 청장은 “독감 백신은 일회용으로 주사기에 충전돼 밀봉 상태로 공급되기 때문에 오염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 아직 이상반응이나 부작용도 보고되지 않았다”며 “국민들께서 과도하게 불안해하시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배송된 물량도, 접종자도 없다”던 전날까지의 설명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서, 질병청은 백신 관리와 사고 이후 대응에 허점을 드러냈다. 게다가 접종을 금지한 백신이 사용되지 않도록 질병보건통합관리시스템에 전산 등록을 할 수 없도록 한 조처와 관련 공지는 무료접종을 중단한지 이틀째인 23일 저녁에야 이뤄졌다. 무료접종용 백신이 유료접종에 사용된 사실도 밝혀져 백신들의 ‘유통 경로가 다르다’는 설명도 무색해졌다. 정 청장은 “2만개에 달하는 의료기관에 일일이 다 안내를 드리지 못해 발생한 일”이라며 “백신 유통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해 국민들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송구하다”고 말했다.

질병청은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함께 신성약품이 유통시킨 백신 가운데 상온 노출이 의심되는 5개 지역 배송 백신을 검사하고 있다. 또 전문가 자문회의를 연 결과 “품질 변화 가능성은 낮지만 백신의 효과가 저하될 수 있다”며 이 부분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배송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매업체에서 의료기관까지 공급되는 배송·유통업체를 전문업체로 변경하고, 모니터링도 강화할 계획이다. 하지만 신성약품과의 조달계약 자체는 유지된다.

한편, 이날 오후부터 만 12살 이하와 임신부를 상대로 한 무료접종이 재개됐다. 이들은 만 13~18살, 만 62살 이상과 달리 의료기관이 개별적으로 백신을 구매해 접종하고 그 비용을 사후에 정부에 청구한다. 예방접종을 받으려면 질병청이 운영하는 ‘예방접종도우미’ 누리집 또는 앱에서 사전에 병·의원에 예약하면 된다. 이 누리집 등에선 추석 연휴 기간에 운영하는 의료기관도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 있는 백신 생산 설비 활용…추가 생산 추진
●국내 제약사, 내년 상반기 남반구 수출용 백신 생산 단계…확보 방안 모색
●올해 추가된 독감 무료 접종 대상 505만 명…우선순위 재검토


9월 22일 만 13~18세를 대상으로 시작될 예정이던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무료접종이 전격 중단됐다. 일부 백신이 유통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된 것으로 확인된 탓이다. 백신의 주요 성분은 단백질이다. 적정 온도에서 보관하지 않으면 변질 우려가 있다. 이 경우 백신을 접종해도 체내에 항체가 형성되지 않거나, 심할 경우 피접종자 건강에 해를 입힐 수 있다. 이 때문에 보건당국은 백신 생산•유통•접종 과정에서 보관 온도를 철저히 지키라고 강조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7월 발표한 ‘백신 보관 및 수송 관리 가이드라인’에는 백신 보관 적정 온도가 ‘일반적으로 2~8℃, 평균 5℃’라고 안내돼 있다. 해당 가이드라인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백신 관리는 예방접종 사업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부적절한 보관•수송으로 인하여 역가(力價•세기)가 떨어진 백신을 접종한 환자는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는 질환에 대하여 완벽하게 보호되지 못할 수 있으며, 부적절하게 보관•수송된 백신 폐기관련 비용은 예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이번 백신 무료접종 중단 사태를 보며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게 바로 이 부분이다. 질병관리청(질병청)은 21일 오후 한 제보자로부터 독감 백신이 유통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됐다는 신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정은경 질병청장은 22일 언론 브리핑에서 “현재까지 확인한 바로는 백신을 운송하는 냉장차에서 백신을 지역별로 재배분하는 도중 일부가 상온에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조사 뒤 결과를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독감백신 일부, 유통 과정에서 상온 노출

현재 의약업계에서는 이 과정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얘기가 떠돈다. 제보자가 독감 백신이 종이상자에 담긴 채 바닥에 놓여 있는 모습, 백신 수송차량 기사가 백신이 보관된 냉장차 문을 열어둔 채 백신 분류작업을 하는 모습 등을 촬영해 질병청에 보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질병청이 이 사실을 공개한 뒤 많은 의사가 무료 접종용으로 공급된 독감백신 상온 노출 사례를 제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사들만 가입할 수 있는 회원제 온라인사이트 메디게이트에는 22일 관련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회원이 “21일 받은 독감백신이 종이상자에 담겨 있었다. 아이스팩이 들어 있지 않았고 냉기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내용의 글을 쓰자 그 아래로 “나도 종이상자에 담긴 백신을 받았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또 다른 의사 커뮤니티에도 “병원 조무사에게 물어보니 누가 독감백신을 택배처럼 데스크 위에 두고 가 백신인지도 몰랐다더라”라는 글이 등록됐다. 전문가들은 이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백신을 수송할 때는 혹시 모를 변질 위험을 피하고자 최선을 다한다. 냉장차에서 병원 냉장고로 옮기는 짧은 시간조차 단축하려고 애쓰는 게 보통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믿기 힘들다”고 탄식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독감백신이 상온에 노출된다 해도 곧 인체에 해를 끼칠 만큼 변질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독감백신은 바이러스를 활동할 수 없도록 처리해 만든, 이른바 ‘사(死)백신’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역가 저하라고 한다. 정 교수는 “각 백신마다 적정 보관 온도가 있고, 그 범위를 벗어나면 효과가 떨어진다”라며 “효과 없는 이른바 ‘물백신’은 접종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석찬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효과가 떨어진 독감백신을 유통할 경우, 그것을 맞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껴 독감 예방조치를 소홀히 할 수 있다. 그 경우 오히려 방역에 방해가 된다”며 “독감백신 효능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올바른 대처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500만 명분 백신 폐기, 최악의 시나리오

정부는 올 겨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독감이 동시 유행할 경우 방역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보고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국민 1844만 명(만 6개월~18세, 만 62세 이상, 임신부 등)에게 독감백신을 무료 접종해주기로 한 상태였다. 우리 국민의 36% 수준이다. 김석찬 교수는 이런 결정의 배경을 “독감과 코로나19의 초기 증상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년 상황을 보면 10월까지는 국내에 발열 및 호흡기 증상 환자가 많지 않다. 관련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실시해 병을 조기 발견, 관리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늦가을 들어 독감이 확산하면 이런 식의 방역이 어려워질 수 있다. 김석찬 교수는 “독감이 통제되지 않으면 엄청난 비용과 인력이 코로나19 진단검사에 투여돼 의료체계에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를 막고자 전문가들은 일찍부터 “건강한 사람도 올해는 독감백신을 맞는 게 좋다”고 강조해왔다. 정부 또한 무료 접종 대상을 예년보다 늘렸다. 이들에게 사용할 독감백신 가운데 585만 명분은 지방자치단체 등이 자체 확보했다. 그 외 1259만 명분은 한 회사(신성약품)가 독점 공급(확보 및 유통)을 맡았다. 바로 이 업체의 백신 배달 과정에서 상온 노출 사례가 확인된 것이다. 

보건당국은 신성약품이 21일까지 전국 보건소 및 병•의원에 독감백신 약 500만 명분을 공급했다고 밝혔다. 현재 이 물량 전체의 접종이 중단된 상황이다. 올해 국내에 공급된 독감백신 총량(2964만 명분)의 약 17%, 공공접종분의 약 27%에 해당한다. 

국내 백신수급은 크게 △백신 제조 및 수입 △백신 검정 △백신 유통 △백신 접종 등 네 단계로 나뉜다. 백신 성능 검증은 식약처, 유통 및 접종 관리는 질병청이 담당한다. 두 기관은 이번 ‘독감백신 상온 노출’ 사태 발생 후 공동으로 조사단을 구성해 백신 품질 확인 및 유통과정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 정은경 질병청장은 “최대 2주 안에 결과를 알리겠다”고 공언했다. 

관건은 문제가 된 백신 500만 명분 가운데 얼마만큼이 폐기 운명을 맞느냐다. 현재로서는 전량 사용불가 판정을 받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정기석 교수는 “실온에 방치됐던 우유를 마시는 것도 꺼려지지 않나”라며 “상온 노출이 확인된 백신을 사용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의원급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의사 단체인 대한개원의협의회도 23일 성명을 내고 상온 노출 백신 전량 폐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독감백신 500만 명분이 갑자기 사라질 경우 정부가 세운 올 겨울 방역계획이 흔들릴 수 있다. 질병청은 지금 백신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최악의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비상계획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때 첫째로 검토할 수 있는 것은 백신 추가생산이다. 김석찬 교수는 “국내에는 GC녹십자, SK바이오사이언스 등 세계적으로 품질력을 인정받는 백신 제조사가 다수 있다”며 “이들을 활용할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고 밝혔다.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다. 9월 초 국민의힘이 전국민 무료 독감 예방접종 실시를 제안했을 때 정부와 업계는 “독감백신 추가 생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시기를 놓쳤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백신 개발 및 생산에 최대 6개월이 걸린다고 말한다.

첫째 방안 ; 국내 백신 생산설비 활용, 추가 생산 추진

김우주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가 매년 2월 말쯤 그해 겨울 북반구에서 유행할 독감 바이러스 종류를 발표한다. 백신 제조사들이 그 정보를 기초로 백신 개발에 들어가면 3월부터 생산을 시작해 9월쯤 출고하는 게 보통”이라고 밝혔다. 현재 시장에 공급되는 독감백신이 바로 이 물량이다. 

계절이 북반구와 반대인 남반구의 독감백신 생산 일정은 그 뒤에 시작된다. WHO가 9월쯤 다음해 남반구에 유행할 독감 바이러스 유형을 공개하면 이듬해 3월쯤 남반구용 백신 공급이 시작되는 식이다. 이 시간표에 따르면 현재 북반구 백신 생산 일정은 마감됐다. 백신 제조사들도 다음 행보에 분주하다. 매년 남반구에 막대한 물량의 독감백신을 수출하는 GC녹십자는 이미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는 글로벌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 등과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 계약을 맺어 관련 준비에 한창이다. 물리적으로 독감백신 추가 생산 여력을 찾기 어려운 게 현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금은 비상 상황인 만큼 가능한 모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백신 제조사들이 추가 생산에 난색을 표했던 9월 초는 독감백신 500만 명분 폐기 가능성이 제기되기 전이다. 당시엔 국내에 독감백신이 충분히 확보돼 있다는 게 일반적 평가였다. 

우리나라에서 독감이 보통 11월 중순 확산하기 시작해 길게는 이듬해 초여름까지 유행한다는 점도 ‘백신 추가 생산’ 검토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제시된다. 보건당국은 매년 인구 1000명당 독감 의심환자가 일정 수준 이상 발생하면 ‘독감 유행주의보’(독감주의보)를 내린다(기준 인원은 해마다 다소 바뀐다). 지난해에는 11월 15일 독감주의보를 발령해 올 3월 27일 해제했다. 2016년에는 12월 8일 발령됐던 독감주의보가 이듬해 6월 1일 풀렸다. 정기석 교수는 “올 겨울 독감이 어느 정도 규모로, 어느 정도 기간 동안 유행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독감백신 500만 명분이 전량 폐기될 경우 지금이라도 추가 생산을 시작해 늦게나마 대중에게 공급하는 게 필요한 일일지 보건당국이 검토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우주 교수는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 GC녹십자가 7월 백신 개발에 본격 착수해 10월 품목허가를 받은 일을 언급하며 “지금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고려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신종플루는 그해 4월 멕시코에서 처음 발견된 뒤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5월 2일 국내 첫 확진자가 나왔고, 6월 11일 WHO가 팬데믹을 선언했다. 당시 국내에는 백신 제조업체가 없고 해외 제품 수입도 무산된 터였다. 독감 유행철을 앞두고 큰 혼란이 우려됐으나 GC녹십자가 단기간에 백신 개발에 성공하며 상황이 안정됐다.

둘째 방안 ; 내년 남반구 수출용 백신 확보 방안 모색

다시 시계 바늘을 2009년으로 돌려보자. 신종플루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던 그해 8월, 이종구 당시 질병관리본부장은 유럽 출장을 떠났다. GSK, 사노피 등 글로벌 제약사 본사를 방문해 백신을 확보해보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이 백신 쟁탈전을 벌이는 팬데믹 상황에서 이 시도는 끝내 실패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 유수의 백신 제조사가 생긴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고 말한다. 이제는 세계 각국이 우수한 한국 백신을 확보하고자 경쟁한다. GC녹십자는 2012년부터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반구 국가에 독감백신을 수출하고 있고, 해당 지역에 독감백신을 공급하는 국제기구 범미보건기구(PAHO) 입찰에서 6년 연속 1위를 할 만큼 인기가 높다. 정기석 교수는 “지금도 국내 백신 제조사가 내년 남반구 수출을 목표로 상당량의 독감백신 생산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 물량 일부를 위약금을 주고라도 우리 쪽으로 끌어올 수 있을지 검토해볼 만하다”고 밝혔다.

셋째 방안 ; 민간 접종분 일부 공공물량 전환

독감백신 500만 명분이 폐기될 경우 또 하나 검토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민간 접종분 가운데 일부를 공공물량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 확보된 독감백신 총량(2964만 명분) 중 1120만 명분은 시장에 나와 있다. 일반인이 돈을 내고 의료기관에서 접종할 수 있는 백신이다. 이 가운데 500만 명분을 정부가 추가로 확보해 기존에 정한 무료접종 대상에게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오히려 국민 보건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우주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의 거의 전부는 기저질환자다. 암, 당뇨, 심혈관질환 등을 가진 사람은 코로나19에 감염될 경우 위험이 크다. 그런데 현재 기저질환이 있는 20~50대는 정부 무료접종 대상에서 빠져 있다. 일선 병원에서 자비로 독감 접종을 받아야 하는데, 민간 물량을 지나치게 줄이면 여기서 구멍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올해 새로 독감백신 무료접종 대상에 추가된 만 13~18세(285만 명), 만 62~64세(220만 명) 인구를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이들 수를 합치면 505만 명이 된다. 김석찬 교수는 “백신 추가 생산, 해외 수출 물량 확보, 무료 접종대상 조정 등 어느 것 하나 쉽게 정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이런 상황이 초래된 게 안타깝지만, 방역당국이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정책적 판단을 시작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전, 백신 유통체계 점검 필수

김우주 교수는 “이번 일을 계기로 국내 백신 유통 체계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이번에 방역당국은 백신 유통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선제적으로 적발하지 못했다. 백신을 상온에 노출한 업체가 스스로 질병청에 잘못을 신고한 것도 아니다.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서 아무도 모른 채 넘어갈 수 있었던 일이 제보를 통해 뒤늦게 알려진 것”이라며 “그로 인해 백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무너졌다”고 질타했다. 이미 각종 온라인 사이트 등에는 “이런 상황에서 백신을 맞아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넘쳐나고 있다. 김우주 교수는 “감염병으로부터 사회를 지키려면 백신 접종이 필수적이다. 적어도 코로나19 백신이 생산돼 국내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백신 유통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 바이오기업 모더나가 개발하고 있는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영하 20도 환경에서 유통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은 영하 70도 보관 환경을 요구한다. 유통 과정에서 온도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코로나19 예방 효과가 떨어지는 등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상온 독감접종 검증 2주걸려..

올해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무료 접종 계획을 전격 중단한 것은 백신을 배송하는 과정에서 상온노출로 냉장 온도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확인됐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22일 독감 백신 접종 중단 관련 브리핑에서 "현재 문제가 제기된 백신은 유통하는 과정상의 문제 즉, 냉장 온도 유지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된 것으로 제조상의 문제 또는 제조사의 백신 생산상의 문제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달 계약업체의 유통 과정에서 백신 500만 도즈(도즈:1회 접종분 단위) 가운데 일부가 백신 냉장온도 유지 등의 부적절 사례가 어제 오후에 신고됐다"고 밝혔다.

또 "정부의 조달계약을 통해 1천259만 도즈 정도를 도매상을 거쳐 의료기관에 공급하는 방식"이라면서 "약 500만 도즈 정도가 공급된 상황이나 아직 접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문제가 된 물량에 대한 최종 품질 검사를 통해 안전성을 확인한 후 백신 접종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안전성 검증에는 약 2주 정도 걸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증 결과 안전성에 문제가 있어 해당 물량을 폐기해야 할 경우 올해 접종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정부는 올해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이른바 '트윈데믹'(twindemic )을 방지하기 위해 올해 독감 무료 접종 대상자를 대폭 확대해왔다.

올해 대상자는 생후 6개월∼만 18세 소아·청소년과 임신부, 만 62세 이상 어르신 등 1천900만명이다.

보건당국은 22일부터 18세 이하 소아·청소년(2002년 1월 1일∼2020년 8월 31일 출생아)과 임신부를 대상으로 무료 접종을 할 예정이었으나, 13∼18세 대상 물량을 유통하는 과정에서 일부 문제점이 발견되자 접종을 전격 중단했다.

한편 독감 백신을 배송하는 과정에서 상온에 일부 물량을 노출한 것으로 파악된 '신성약품'은 올해 처음으로 인플루엔자 백신 조달 계약을 딴 것으로 확인됐다.

이 회사는 냉동차에서 냉장차로 백신을 옮겨 싣는 배분 작업을 야외에서 진행하면서 차 문을 열어두거나 백신 제품을 판자 위에 일정 시간 방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