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됐던 도돌이표..정부 엄정 대응+차가운 여론
"이미 여론 돌리기엔 역부족" 비판 속 "의대생이 직접 나서야"

국가고시 불응에 대한 의대생의 국민청원 대국민 사과 게시글에 대학병원장들까지 나서 의대생 대신 머리를 조아렸지만 여론은 차갑기만 하다.

지난달 초 우여곡절 끝에 의료계 파업이 봉합 수순에 들어갔지만 이런 시나리오는 예고됐었다.

정부는 '재응시 불가' 원칙을 고수하고 있고 이 과정 속 정부를 향한 응원 여론까지 확대됐다. 결국 당사자인 의대생들의 국민을 향한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으로, 그렇지 않다면 재응시를 둘러싼 거듭된 여러 이해 단체들의 지루한 사과와 입장 발표는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병원장들은 지난 8일 '의대생 국가고시 미응시 문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며 "질책은 선배들에게 해달라. 6년 이상 열심히 학업에 전념했고 준비한 의대생들이 미래에 의사로서 환자 곁을 지킬 수 있도록 한번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다투는 필수 의료분야에 대해 젊은 의사들이 진료를 거부한 상황을 관리해야 할 병원이나 교수들로 인해 국민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은 부분에 대해 구체적 언급이 없다"며 재응시 불가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의사 국가고시를 둘러싼 갈등은 지난달 이미 의료진들이 복귀하면서부터 예고됐던 문제다. 정부는 대한의사협회와 지난달 4일 의사단체 집단휴진 중단과 의정협의체 구성을 골자로 한 합의문에 서명했지만 전공의, 의대생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지속했다.

의대생들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 의대 설립 추진 등 의료 정책을 반대한다며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거부했고, 정부는 "추가 접수 기회를 주는 방안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당시 손영래 보건복지부 대변인은 의대생 구제책과 관련해 "거의 일주일간 반복해서 동일한 답을 드리고 있다"며 "당사자들이 자유의지로 국가시험을 거부한 상황에서 추가 시험을 검토할 필요성은 떨어진다"고 답했고 그를 가리켜 네티즌들은 '단호영래'라며 응원하기도 했다.

이를 의식하기라도 한 듯 의과대학 학장, 원장, 의료계 원로 등은 대국민 호소를 통해 '후배들을 위해 재고해달라'는 사죄의 입장을 밝혔지만 정작 의대생들은 별다른 입장을 내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의과대학 4학년 학생들은 지난달 13일 단체행동을 유보하기로 하는 등 한발 물러선 입장을 보였지만, 핵심인 국시 실기시험 재응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은 없었다.

이후 지난달 24일 국시 응시 거부 입장을 선회해 '응시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는 국민 여론의 반대가 여전히 높다는 이유로 추가 기회 부여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재 정부가 재응시 부여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것은 '국민적 양해'다. 손 대변인은 지난 4일 "의사 국시의 추가적인 응시 기회 부여는 형평성과 공정성의 문제가 있다. 국민적 양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검토가 곤란하다"며 검토 자체도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던 지난 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한 의대생이 '국시접수를 취소했던 의대생이 국민께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는 단호한 입장이다. 이창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청와대 게시글과 관련해 누가 했는지 현재로서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런 게시글로 인해 국민 양해를 구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현재까지 의대생들이 직접 언론이나 국민 앞에 나서서 공개적으로 사과한 일은 어느덧 한 달여 시간이 지났지만 전무한 상태다. 여론도, 정부도 그 점을 꼬집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8일 국정감사 현장에서 "이 문제는 의료계와 정부가 한 몸으로 대국민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며 "1년에 수백개 국가시험을 치르는데, 어느 한 시험만 그것도 응시자들 거부로 인해 재응시를 하기는 쉽지 않고 국민의 양해가 필요하다"고 에둘러 답했다.

일부 의대생들에 이어 국내 주요 대학병원장들이 의사 국가고시(국시) 거부 문제에 대한 대국민 사과에 나선다. 악화된 국민여론을 되돌리려는 의료계의 반성 노력이 국시 재응시 허용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7일 의료계에 따르면 김영훈 고려대 의료원장과 김연수 서울대 병원장, 윤동섭 연세의료원장 등은 8일 정부서울청사 본관에서 의대생들의 국시 미응시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동안 의료단체나 의대 교수진이 국시 재응시 기회를 고려해달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한 적은 있지만 공식 사과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부 의대생의 사과에도 여론의 움직임이 없자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한 의대생은 전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국시접수를 취소했던 의대생이 국민들께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청원인은 “학생들의 짧은 식견으로나마 올바른 의료라는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해보려는 나름의 노력에서 나온 서투른 모습이었다. 국시 거부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놓고 ‘대표성이 없다’, ‘사과를 익명으로 하느냐’, ‘공식 경로로 사과해라’ 등의 지적이 잇따르면서 국민여론은 여전히 차가웠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대생 몇 사람의 사과만으로는 국민 수용성이 높아질 것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부 “국시 재응시는 국민적 동의가 전제조건”

 

대학병원장들은 대국민 사과를 발표한 뒤 전현희 국민권위원장과 만나 국시 재응시 관련 협의를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는 연일 권익위를 찾아 의대생 국시 재응시를 해결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전국의대교수협의회와 서울시 25개구 의사회 회장단은 지난 5일,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6일 권익위를 방문했다. 국시를 주관하는 이윤성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원장도 이날 전 위원장을 만나 국시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요청했다.

정부는 의대생들에게 추가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규모 국시 미응시로 인해 내년에 발생할 수 있는 진료공백을 최소화하는 방안들도 별도로 검토 중이다.

내년 3000여명의 신규 의사가 배출되지 않으면 대형병원 진료업무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병원 인턴 수급이 어려워지면 의료진에 연쇄적인 업무가중이 발생하고, 이는 의료의 질 하락과 국민건강에 대한 악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의대생들의 병역도 꼬여 공중보건의 수급 문제가 불거진다. 의사가 없는 지역에서 근무하게 되는 이들이 빠지게 되면 공공의료 인력 부족에 따른 의료공백, 지역 의료격차 심화 가능성도 있다.

박능후 장관은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추정해보니 공중보건의 부족 인력은 400명 내외다. 지역사회에 기존 의료인력들이 있고 꼭 안 가도될 지역도 있기 때문에 그런 지역은 공보의를 철수해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했다.

병원 인턴 부족 문제에 대해선 “레지던트가 인턴의 역할을 일부 맡을 수 있고 전문간호사도 보조적인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인턴 업무 일부를 대처할 수 있다. 나아가 입원 전담의를 대폭 늘려서 인턴 역할에 대처하고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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